여는 글: 갤러리스트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을 ‘갤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갤러리스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갤러리 스쿨〉 워크숍의 호스트이자 아터테인 큐레이터 황희승은 갤러리스트를 작가와 관객, 그리고 컬렉터를 연결하는 매개자라고 설명합니다.
매개자로서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누구와 만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때 ‘판매’라는 대표적인 수단은 단순한 작품의 거래를 넘어 작가의 생계와 작업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갤러리의 운영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갤러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관객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판매만이 유일한 방식일까요?
황희승 큐레이터는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다양한 예술 종사자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SNS를 통해 황희승 상담소를 운영하며 현장의 고민을 나누어 온 그는 〈갤러리 스쿨〉을 통해 예비 갤러리스트를 위한 보다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학교나 제도권 교육에서 다루기 어려운 실제 현장의 경험과 판단의 기준을 공유하며, 결국 갤러리스트라는 역할이 무엇을 책임지고 어떤 태도로 작가와 예술을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예비 갤러리스트와 현직 종사자들이 모여 각자의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과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했습니다. 이 웹진에는 두 차례의 워크숍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담아보았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지점 중 하나는 “갤러리스트는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을 때 어디까지 스스로 해낼 수 있는지, 또 갤러리스트라는 역할이 어떤 관계망 속에서 움직이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워크숍에서는 전시가 만들어지는 실제 과정과 그 안에서 갤러리스트가 맡게 되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조된 점은 갤러리의 일은 결코 혼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갤러리의 일은 작가와 기획자, 다양한 외부 협력자들과의 협업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역할 분담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전시의 조건과 일정, 예산과 공간의 제약에 따라 각자의 역할은 계속해서 조정되며 특히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필연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일을 어디까지 맡기고 조율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실제로 여러 전시를 동시에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일부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 위임되고, 그 과정이 문제없이 이어져야 전체 운영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협업은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신뢰 구조 속에서 가능해집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 나의 소중한 분신들
“이번에 (2026 연희아트페어) 브로셔를 제작할 때 색감 때문에 글씨가 잘 안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걸 인쇄소 사장님이 밤새 보정을 해주셨어요. 10년 넘게 같이 일하다 보니까 저를 위해 그런 수고를 대신해 주신 거죠. 정말 감동이었어요.
또 한 번은 여러 전시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는데 운송사 실장님이 저를 대신해서 작품을 전달해 주셨어요. 제가 직접 간 것처럼 작품을 확인하고, 보호하고, 한 번 더 체크해 주셨죠. 그런 마음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이분들이랑 신뢰를 잘 쌓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여기저기 제 분신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 사례는 협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업무를 나누는 것을 넘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전시 운영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갤러리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일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갤러리스트는 작가를 사랑해
사실 많은 갤러리스트들은 자신의 취향과 관심을 바탕으로 작가를 발견하고 그 작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관계를 만들고 연결하는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판매한다’는 단편적인 모습만 바라본 채 그 안에 존재하는 태도와 감각, 그리고 오랜 관계의 과정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갤러리스트는 작가의 작업을 오랜 시간 가까이 지켜보며 ‘매개자’로서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연결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 역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갤러리스트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작가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동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갤러리스트에게 있어 많은 작품을 판매하는 것만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작품은 좋은 컬렉터에게 소장되도록 하고, 또 다른 작품은 전시나 기관 소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흐름을 함께 설계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단순히 판매의 양만을 늘리는 것은 일시적인 성취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그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경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작가와 갤러리스트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이러한 ‘판매의 균형’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 다 팔면 끝일까?
“막상 다 팔아보니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나중에 다른 전시를 하려고 할 때 작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고요.
작가는 계속 작업을 하긴 하지만 어떤 기획이나 주제에 맞는 작업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거든요. 초반에는 하나라도 더 팔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작가는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과정 중에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판매되는 것보다 일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남아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판매하는 것과 동시에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 작가를 소개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쪽에서는 또 다른 관객들이 작품을 보게 되니까요.
결국 이런 활동들이 쌓여야 다시 판매로도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연결되어 돌아가는 거죠.”
그렇다면 갤러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택해야 할까요. 작가를 발굴하는 과정은 단순히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 관람이나 오픈 스튜디오, 졸업전 등 다양한 현장을 기반으로 한 리서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입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2017년부터 독일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소개해 왔습니다. 크지 않고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작품들이었음에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경험은 자신이 믿고 선택한 감각이 다른 맥락에서도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작가를 선택하고 소개하는 기준은 단순히 시장의 규모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을 믿고 지속적으로 제안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초기 단계에서는 “판매되지 않으면 내가 구매한다”는 마음으로 전시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작가의 작업을 지지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식이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기획과 작가 섭외의 기준이 되며, 장기적으로는 자신만의 방향과 감각을 만들어가는 기반으로 이어집니다.

오래 이어가는 방법
워크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또 하나의 질문은 “어떻게 이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이제 막 갤러리스트나 기획자의 일을 시작하려는 참여자들에게 지속 가능성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이에 대해 황희승 큐레이터는 처음부터 완벽한 조건이나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목표로 하기보다 작고 명확한 기획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며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이미 자리 잡은 작가들보다 이제 막 데뷔하거나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신진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나아가 청년 및 중진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2019년부터 드로잉 기반 전시 프로젝트인 《세상의 모든 드로잉》 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0년부터는 〈연희 아트페어〉를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단번에 완성하기보다 하나의 기획을 오랜 시간 지속하며 관계와 경험을 함께 축적해온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전시 횟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큐레이터 자신만의 방향성과 감각을 장기적으로 구축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일을 늘 높은 강도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만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데 있기보다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이러한 ‘지속’의 감각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 지치지 않는 이유
“일 자체가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재미있었고, 감사했고, 뭔가를 하나 해낼 때마다 작은 자부심이 쌓였어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감각도 자연스럽게 생기고요.
물론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에요. 예산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마주할 때도 많죠. 특히 (아터테인) 대표님이 그런 고민을 하실 때는 저도 마음이 무거워져요. 그럴 때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도 이 환경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어요. 저는 이 일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화려한 공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에 누가 오느냐, 그리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가(연희동) 외진 공간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고, 그 안에 예술이 머물 수 있다는 점이 저는 더 좋아요.”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일을 버티는 감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환경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의미를 만들어가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결국 지속 가능성은 완벽한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를 만들어가며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닫는 글: 결국 작품을 애정하는 마음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은 결국 ‘사람’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어가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애정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이해 역시 필요합니다. 미술계의 흐름을 읽고, 창작과 전시, 행정과 시장이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선택을 이어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축적이 결국 작가와 관람객, 협력자 사이의 신뢰로 이어집니다.
황희승 큐레이터는 갤러리스트라는 일이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결국 갤러리스트는 작품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자이면서도 동시에 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작가와 관람객, 공간과 지역,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작은 관계들이 이어질 때, 하나의 전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다음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됩니다.
어쩌면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단순히 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갤러리 스쿨〉은 그 관계를 어떤 태도로 시작하고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