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온 연대의 역사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얽히섥히 콜렉티브〉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욕망과 실천을 탐색하고, 콜렉티브를 통해 이를 확장해 보는 워크숍입니다. 참여자들은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시각예술의 흐름을 살펴보고, 한국 여성운동사와 국내외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의 다양한 사례를 함께 탐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위치성과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한편, 콜렉티브 활동 속에서 축적된 협업의 노하우와 돌봄의 감각, 연대의 방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호스트 노뉴워크(NoNewWork)는 시각예술 기반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으로, 동시대 페미니즘 이슈를 논의하고 시각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실천의 방식을 모색해 왔습니다. 예술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활동가 등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유동적이고 과정적인 연대체를 지향하며, 페미니즘과 미술을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얽히섥히 콜렉티브〉에서는 노뉴워크 성지은 연구자와 함께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99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1999)을 다시 읽고, 그 안에서 제기된 여성성, 차이, 연대의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봄로야 작가는 1990년대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 ‘입김’부터 오늘날의 ‘랩삐(lab B)’, ‘서울퀴어콜렉티브’, ‘호이요’, ‘우프’, ‘FDSC’, ‘AWA’, ‘내일소녀단’ 등 국내외 콜렉티브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예술과 사회운동, 아카이브, 교육, 커뮤니티 조직이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를 소개했습니다.
과거의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을 가시화하고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여성성을 전략적으로 강조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과 비판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콜렉티브는 이러한 유산 위에서 젠더, 퀴어, 기술, 생태, 돌봄, 지역성 등 더욱 복합적인 의제를 다루며 새로운 관계와 실천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팥쥐들의 행진》부터 오늘날의 콜렉티브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가 어떤 고민과 실천을 통해 현재에 도달했는지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연대와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함께 상상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페미니즘 미술은 하나의 얼굴일까?
1999년 개최된《99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은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집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이 전시를 다시 살펴보며, 당시 한국 미술계가 상상했던 ‘여성’과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는지 함께 질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지은 연구자는 《팥쥐들의 행진》이 등장한 1990년대 후반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정체성, 차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시는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가시화하며 당시 미술계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동시에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할 것인가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전시 서문이 “단수가 아닌 복수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시 기획은 돌봄, 양육, 평화, 감정이입과 같은 본질주의적 여성성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었습니다. 여성을 자연과 연결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대안적 가치로 제시하는 시도는 의미 있었지만 동시에 여성을 특정한 이미지 안에 다시 가두는 한계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미술은 반드시 여성의 몸이나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어야만 할까요? 혹은 여성성을 재현하는 특정한 방식이 존재할까요?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출발점 삼아, 오늘날 페미니즘 미술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과거의 논쟁을 다시 읽는 일은 결국 현재의 페미니즘 미술이 어떤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신체와 젠더 너머의 페미니즘으로
이어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갔습니다. 참여자들은 과거의 페미니즘 미술이 생물학적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노뉴워크의 혜원 작가는 페미니즘 미술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협소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신체나 젠더를 직접 다루지 않으면 페미니즘 작업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작가들 역시 이러한 시선을 의식해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연구하고 있는 한 참여자는 최근 페미니즘 연구가 트라우마와 억압에 집중되는 경향을 언급하며, 오히려 ‘기쁨’과 ‘삶의 경험’에 주목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페미니즘 미술과 연구가 확장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읽혔습니다. 결국 페미니즘을 하나의 정답이나 규범으로 정의하기보다,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열린 질문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라진 목소리를 기록하고 다시 잇기
주요하게 다룬 또 다른 키워드는 ‘역사’와 ‘기록’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은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가 충분히 연구되고 기록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서구의 페미니즘 이론은 활발하게 번역되고 논의되어 왔지만, 정작 한국에서 어떤 실천과 움직임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페미니즘 미술과 관련된 개별 작가나 전시에 대한 연구는 존재하지만,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읽고 공유하는 작업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는 특정한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자료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여러 실천들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현재로 이어주고 새로운 실천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이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본 워크숍이 과거의 전시와 담론을 다시 살펴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다시 읽는 일은 결국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고, 앞으로 어떤 질문을 이어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콜렉티브는 다름을 견디는 일
2부에서는 봄로야 작가님의 강연을 중심으로 과거와 오늘날, 국내와 국외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며, 오늘날 콜렉티브의 의미를 톺아보았습니다. 1990년대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 ‘입김’부터 오늘날의 ‘랩삐(lab B)’, ‘서울퀴어콜렉티브’, ‘호이요’, ‘우프’, ‘FDSC’, ‘AWA’, ‘내일소녀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을 전시 안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퍼포먼스, 출판, 아카이브, 교육, 사회운동, 온라인 플랫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확장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왔습니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콜렉티브가 단순히 의견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질문을 만들고, 논쟁하고, 기록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연결망에 가까웠습니다. 노뉴워크 자청 작가는 수평적인 조직 역시 모든 차이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합의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콜렉티브는 하나의 형태라기보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갱신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실천과 언어가 만들어집니다.

닫는 글: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결을 위하여
〈얽히섥히 콜렉티브〉 워크숍은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페미니즘을 상상할 것인지 질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990년대의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여성성을 강조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비판과 논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논의의 연장선 위에서 다시 질문합니다.
“여성성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경험과 목소리를 지우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가고, 새로운 관계와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콜렉티브는 단순히 함께 작품활동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장이 됩니다. 페미니즘 아티스트 콜렉티브의 역사를 반추하고 현재를 마주하며 미래를 질문해 본 이번 시간은, 과거를 질문하고, 현재의 고민을 나누며, 앞으로의 연대와 실천을 상상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과 상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