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전시는 어떻게 플랫폼이 되는가?
‘큐레이팅(curating)’은 ‘돌보다’, ‘관리하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해 작품을 선택하고 연결해 하나의 맥락을 만드는 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시는 단순히 보여주는 형식을 넘어 특정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기획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큐레이팅 스쿨〉 워크숍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 전시를 하나의 결과물로 보기보다 생각을 조직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나아가 전시가 ‘플랫폼’으로서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논의합니다.
워크숍의 호스트인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신보슬은 미술관 내부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예술가–커뮤니티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동하는 전시 구조를 기반으로 작가와 지역을 연결하는 〈The Show Must Go On〉,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바틱스토리〉, 지역과 생태를 기반으로 한 《Eco Art Festival: 모두의 셸터》와 같은 프로젝트는 전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구조로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워크숍은 각자의 관심에서 출발한 미완성의 기획안을 꺼내어 함께 다듬고 확장해 보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참여자들은 기획의 출발점과 목표,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공유하며, 그 안에 남아 있는 모순과 설득되지 않는 지점들을 질문을 통해 다시 점검했습니다. 흩어져 있던 생각들은 대화를 통해 정리되었고, 막연했던 아이디어는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웹진에서는 큐레이팅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전시를 ‘플랫폼’으로 확장해 나가기까지 워크숍에서 이어졌던 논의의 흐름을 따라 주요 지점들을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전시를 관계가 생성되고 축적되는 플랫폼으로 바라볼 때 기획의 기준과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큐레이팅 2.0 : 전시에서 플랫폼으로
‘큐레이팅 2.0’은 큐레이팅의 개념을 다시 짚어보고 그것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를 묻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전시는 더 이상 작품을 배열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미술관과 기획자의 문제 의식을 기획 실천으로 확장하는 ‘비판적 큐레이팅(critical curating)’으로 전환했습니다. 비판적 큐레이팅은 서구의 경우 196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역사를 지닌 미술관 제도를 대상으로 수행해 온 제도비판적 실천의 맥락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난 예술 작품의 형태는 전시 기획 또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했고, 전시의 기능은 고정된 기준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특정 시기의 제도적 조건과 담론 환경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큐레이팅 2.0’ 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큐레이팅이 끊임없이 갱신될 수 있음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버전을 거듭하며 업데이트되듯, 큐레이팅 또한 고정된 방식이 아니라 시대의 조건에 따라 계속해서 수정되고 확장되는 실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2.0’은 특정 단계에 대한 명명이기보다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큐레이팅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큐레이팅 스쿨〉 워크숍은 바로 이 ‘지금의 버전’을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큐레이팅을 구성해보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각자의 큐레이팅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기획안의 S(Strengths) W(Weaknesses) O(Opportunities) T(Threats)을 분석해 오도록 했습니다. 분석에 기반한 참여자의 발표와 질문을 통해 기획안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과정에 대한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자가 설정한 방향성이 동시대 미술계의 쟁점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그것이 현실과 사회에 대한 어떤 응답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문제의식이 동시대의 감각과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설득력을 가질 때, 기획안은 기획자의 취향을 넘어 보다 넓은 관람객의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때 관람객의 응답은 하나의 기획이 ‘좋은 기획’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한편으로 워크숍의 호스트 신보슬 큐레이터는 “저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큰 응원이고 지지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을 위해서 큰 전시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는 그 커뮤니티 멤버 안에서 더 긴밀하게 알아가고, 작품이 아닌 작가와 관람객의 관계를 메인으로 삼아 그들의 교류를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과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구조로서의 전시는 왜 중요해졌을까요? 특히 온라인 환경의 확장으로 전시를 직접 찾는 관람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관람을 ‘만남’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식, 즉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는 장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중요한기획의 기준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Showing 보다 Sharing & Connected
신보슬 큐레이터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전시의 의미를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다양한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전시가 플랫폼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간략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 진행 일시: 2024년 10월 1일 ~ 11월 22일
- 장소: 아그네스파크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 거제남서로 5187)
- 참여 작가: 김시하, 김태협, 김희주, 김현준, 나현, 노세환, 노순택, 메리 매팅리, 민예은, 방앤리, 송성진, 원성원, 이배경, 이예은, 조재용, 최건, 최병철, 픽셀킴, 함경아, 홍범, 홍영훈
《Eco Art Festival: 모두의 셸터》는 환경(E)에 초점을 맞춘 ESG 기반 프로젝트로, 기후위기와 생존이라는 동시대적 문제를 중심에 두고 기획된 전시입니다. 1975년 거제도에 위치했던 수산물 가공 공장을 리노베이션하여 조성된 아그네스파크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 속에서 관람객이 직접 이동하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가상적 시간 설정을 기반으로 미래의 생존 환경을 상상하게 만드는 내러티브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과 공간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서사 안에서 작동하며 관람객은 그 안을 이동하며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시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작가와 관람객, 그리고 공간과 환경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원의 사용을 줄이고 생태적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는 전시가 물리적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 〈바틱스토리〉
- 진행 일시: 2015년 ~ 현재
- 장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
〈바틱스토리〉는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법인 바틱(batik)을 기반으로 한 국제 예술 교류 프로젝트로 한국의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이 인도네시아 지역 장인들과 협업하며 진행된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바틱은 수백 년 동안 전승되어 온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 기술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적 자산이기도 합니다. 〈바틱스토리〉는 이러한 전통 기술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예술가들은 현지에 머물며 장인들과 직접 협업하고,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과 감각이 교차하는 실험적 협업의 장으로 작동합니다. 또한 〈바틱스토리〉는 특정한 장소나 기간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지역과 시간대를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전시와 워크숍, 팝업 형태로 확장되며 참여자와 맥락이 계속해서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 진행 일시: 2011년 ~ 현재
- 장소: 한국, 캐나다, 필리핀, 거제 등 국내외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
〈The Show Must Go On〉은 2011년부터 시작된 토탈미술관의 이동형 전시 프로젝트로 고정된 전시 형식과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특정 장소에 머무르는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여행하는 예술가의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작가들은 하나의 가방 형태의 전시를 구성하고 이를 가지고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작업을 공유합니다. 이 가방은 단순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이 응축된 ‘이동 가능한 전시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전시는 이동과 교류를 통해 계속해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동일한 전시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조건과 맥락에 따라 전시의 내용과 관계 방식이 달라지며 재구성됩니다. 또한 〈The Show Must Go On〉은 전시와 함께 워크숍, 참여형 프로그램, 네트워킹을 병행하며 작가와 관람객,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국가 간 협업 프로젝트는 전시를 단일한 결과물이 아닌 관계가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으로 작동하게 합니다.
세 가지 사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가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환경 속에서 경험을 조직하는 방식, 전통을 매개로 협업을 형성하는 구조, 그리고 이동을 통해 관계를 확장하는 방식까지 전시는 더 이상 하나의 장소나 형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큐레이팅을 통해서 어떤 연결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이어지는가입니다.

큐레이팅 하고 싶어요? 일단 해!
아무리 많은 고민도 실행되지 않으면 전시가 될 수 없고 시도해보아야 무엇이 필요한지 비로소 드러납니다. 워크숍 종료 후 인터뷰에서 신보슬 큐레이터가 남긴 “일단 해!”라는 한마디는 이러한 태도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작은 시도라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수정하고 이어가는 것. 기획은 그렇게 구체화되고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실제로 경험해 보기 위해 워크숍에는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참여자들이 모였습니다. 각자 자신의 기획안을 가져왔고, 마지막 회차에서는 이를 실제로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기획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기획안을 점검했습니다.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데서 나아가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광주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독립 기획자는 기획 과정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기획의 출발점과 다른 프로젝트와의 연결성, 실행 계획까지 구조적으로 드러난 이 발표는 기획의 특성을 ‘독립 기획자’로서의 방향성으로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 기관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참여자는 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과 시민을 연결하는 기획안을 제시했습니다. 초기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다양한 참여자들의 관점을 통해 현실적인 조건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발전했습니다.
- 예술 기획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모임을 기반으로 한 기획안을 공유했습니다. 이전 실행 경험에서 드러난 한계, 특히 참여자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이유와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역과 예술을 결합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기획해 온 참여자의 발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지역과 연결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조건과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서로 다른 지역과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이 각자의 관점을 공유하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교차 속에서 하나의 기획은 특정 장소에 머무르기보다 다른 지역과 맥락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드러냈습니다. 큐레이팅은 점점 더 ‘어디에서 하는가’보다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워크숍이 끝난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을 남겨 큐레이팅은 하나의 프로젝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계속 확장되는 과정임을 확인했습니다.
닫는 글: 관계를 만드는 일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과 큐레이팅의 형태 역시 계속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큐레이팅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여주는 일을 넘어, 관계가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실천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워크숍에서 ‘플랫폼 큐레이팅’이라 명명한 방식 또한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아직 이 실천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계에 집중하는 큐레이팅이 예술의 결과를 넘어 예술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 관람객, 기획자, 그리고 그 사이의 다양한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보다 건강한 예술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전시를 ‘해야 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방법을 통해 무엇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관계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그 질문이 앞으로의 큐레이팅을 움직이는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