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하여
케이팝 산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산업 생태계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업 구조는 대형 기획사와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음악과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브랜드, 굿즈, 팬 플랫폼 등 다양한 수익 모델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장은 단지 시장 규모의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케이팝은 이제 음악 산업을 넘어, 플랫폼과 데이터, 감정과 관계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문화 산업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기에 산업의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경험과 감정들마저 점점 더 정교한 수익 구조 안으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팬덤의 구매력을 원동력 삼아 발전한 ‘팬더스트리(Fandustry)’를 기반으로, 아이돌과 팬의 ‘친밀성’이라는 감정은 산업의 이윤을 위한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는 케이팝 산업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뿐만이 아닌 사랑과 헌신으로 구축된 팬덤의 정서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스트리밍과 구매, 투표, 홍보, 오프라인 활동까지 수행하며, 정서적 노동을 자본화된 구조 안에서 제공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팬은 아이돌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랑의 주체임과 동시에 산업을 자본주의적으로 지탱하는 소비자가 됩니다.¹
케이팝 산업을 지탱하는 것은 팬들의 소비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돌을 빛내기 위해 ‘스태프’들은 무대와 카메라 밖에서 쉼 없이 움직이지만, 이들의 노동은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해 여전히 불안정한 처우와 높은 노동 강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이돌과 가까이 일하는 화려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작업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건강상의 부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² 빛나게 하기 위해 밤낮없이 ‘서포트’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갑질 혹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노동 조건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속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운 ‘지속 가능한 덕질’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케이팝을 둘러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케이팝 하는 여자들은 케이팝을 사랑하는 여성 팬들이 모여 더 나은 생태계를 상상하고 만들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들은 케이팝을 거대한 사업으로만 재단하기보다, 그 안에서 사랑하고 일하고 소비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꾸준히 귀 기울여 왔습니다. 한겨레, 들불과 공동 기획한 연재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케이팝을 위한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케이팝 속 ‘문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 토크 with 들불」을 개최하는 등, 팬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발화의 주체로 위치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워크숍은 케이팝 하는 여자들과 함께 팬으로서 가지는 불편한 마음들을 꺼내어 ‘요리’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케이팝 생태계 속에서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의 마음은 단순한 기쁨이나 열정으로만 남기 어려워집니다. 나의 사랑이 손쉽게 자본으로 치환되거나, 나의 애정이 누군가의 노동을 소모하는 구조에 편입되는 경험은 필연적으로 불편함과 질문을 동반하고,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기쁨과 열정, 불편함과 의구심, 그리고 각자의 사랑을 ‘요리 재료’로 삼아 함께 다듬고 끓여 보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고, 감정을 발효시키며, 생각을 양념하여 하나의 글로 작성했습니다. 이때 워크숍의 목표는 ‘잘 쓰기’가 아니라 ‘다르게 요리하기’로, 깔끔하고 잘 정돈된 글보다는 여기저기 헤매고, 때로는 과하게 끓었거나 설익은 감정이 남아 있는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쿠킹 케이팝 Cooking K-pop〉 마지막 글 공유
웹진 ⌜케이팝과 사랑의 언어들⌟은 케이팝 하는 여자들(유진, 구구, 박다해)과 네 명의 참여자들이 8주 동안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의 언어’를 써 온 과정을 소개합니다. 워크숍은 세 명의 이끎이가 각자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에 기반해 선정한 세 개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쪽글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박다해 님은 팬덤 문화 속에서 우리가 마주해 온 ‘불편한 감정들’에 주목하며, 대상화와 파묘, 사이버불링, 소비 구조 등 팬덤 문화의 다양한 양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구구 님은 케이팝 속 젠더를 주요한 키워드로 삼아, 아이돌을 둘러싼 젠더 문법과 그 안에서 형성된 개인의 감각과 욕망을 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진 님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며, ‘내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덕질의 욕망과 결핍, 그리고 각자가 만들어 온 사랑의 형태를 성찰해 보기를 제안했습니다.
팬덤 문화: 팬덤 경험 되짚기
케이팝 팬덤은 산업을 지탱하는 소비 주체를 넘어 문화와 사회의 장면까지 가로지르는 집단적 행위자로 변화해 왔습니다. 팬덤의 집단적 참여 없이는 음원 차트 성과, 앨범 판매량, 온라인 화제성, 공연 흥행과 같은 산업의 주요 지표들은 물론 오늘날의 케이팝 산업 구조 역시 유지될 수 없습니다. 동시에 팬들은 산업이 제공한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생일 카페 개최, 기부, 자체 이벤트 등 다양한 실천을 능동적으로 조직하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팬덤의 주체성은 문화 영역을 넘어 사회적 장면에서도 가시화되었습니다. 특히 2024년 겨울, 집회와 시위 현장에 등장한 각양각색의 응원봉은 케이팝 팬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온 정치적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케이팝 팬덤이 소비 집단을 넘어 자신들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사회적 연대를 표현하는 문화적 주체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워크숍에서는 팬덤 안에서 아이돌을 사랑하고 응원해 온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미리 제안하고 각자의 글감 재료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 나와 같은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덤은, 주로 어떤 형태로 응원/지지를 보냈나요?
● ‘팬덤’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팬덤’에 속하는 사람이었나요?
● 팬덤과 아티스트의 ‘건강한 거리’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또 그게 어떻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 케이팝씬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팬덤’의 응원 방식이 작용한다고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팬덤에 속했던 경우
● 팬덤에 속해서 좋았던 경험/불쾌하거나 회의를 느꼈던 경험은 각각 무엇이었나요?
● 팬덤의 일원이 되어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게 내 삶을 변화시킨 적이 있나요?
팬덤에 속하지 않았던 경우
● 나는 왜 팬덤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꼈나요? 소속감이 들지 않았던 계기 또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질문에 답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팬덤 경험이 종종 양가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팀)의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결집한 집단은 그 자체로 강한 동력과 에너지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가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팬덤의 활동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팬덤 내부의 갈등과 공격성이 증폭되거나 특정 개인과 집단을 향한 사이버 불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한 소속사와 아이돌의 모든 발언과 행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평가하는 문화는 비판을 넘어 통제와 배제의 방식으로 작동하며, 캔슬 컬처와 같은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⁶ 이처럼 팬덤 문화의 확장은 새로운 연대와 실천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동시에 권력화된 집단행동이 만들어내는 부작용과 긴장을 함께 수반하고 있습니다.
케이팝 생태계 안에서 ‘소비’는 팬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지 표현이며, 소비주의는 이미 팬덤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소비 중심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운 조건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소비가 팬과 아이돌 모두에게 점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산업이 설계한 소비 구조는 팬들로 하여금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그만큼 소속사로부터 어떤 형태의 보상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로부터 비롯된 서운함과 분노는 소속사를 향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아이돌 개인을 향한 감정으로 옮겨 가는 경우도 나타납니다. 소비가 늘어날수록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바 역시 함께 커지며, 애정은 점차 요구의 형태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팬은 아이돌이 ‘버블³과 같은 소통 앱에 자주 나타나지 않거나, SNS에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현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아닌, 또는 ‘소비자’를 넘어 ‘팬’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워크숍 이끎이 중 한 명인 유진 님은 쪽글을 통해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팬덤 내에 완연한 소비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아이돌을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자고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소비의 객체가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사랑하는 존재로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젠더: 나의 욕망 알아보기
케이팝 산업은 성별 이분법적 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젠더 규범이 전복되고 뒤섞이는 공간입니다. 무대 위의 케이팝 아이돌은 현실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모방함과 동시에 비틀기도 합니다. ‘남성성’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근육질의 몸부터 크롭티나 스키니진을 입은 젠더리스한 모습까지 다양한 남성성을 상연합니다. 또한 남성 간의 친밀감이나 이에 기반한 남–남 커플링이 팬덤 안에서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며, 멤버들 사이의 스킨십, 이른바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가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팬들은 이러한 문화 속에서 동성 간 사랑과 성애를 중심으로 소설(팬픽)을 쓰기도 하는 등 무대 위의 남성성을 기반으로 팬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⁴
케이팝에서 익숙하게 반복·수행되고 있는 젠더 문법과 수행성은 낯선 불편함이나 전복적인 쾌감을 불러 일으켰을 수도 있으며,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각자의 욕망을 건드리는 지점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근육질의 몸을 가진 아이돌에게 끌리는 ‘나’는 전통적인 서구의 남성성에 매혹되고 있는 걸까요? 반대로 귀엽고 연약해 보이는 남성을 좋아한다면, ‘나’보다 약한 존재를 선호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요? 이처럼 아이돌을 향한 호감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젠더 감각과 관계 맺기의 방식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워크숍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케이팝 문화 안에서 젠더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것을 욕망하고 있는지 탐구해 보고자 했습니다.
● 나와 같은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덤은, 주로 어떤 형태로 응원/지지를 보냈나요?
● ‘팬덤’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팬덤’에 속하는 사람이었나요?
● 팬덤과 아티스트의 ‘건강한 거리’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또 그게 어떻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 케이팝씬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팬덤’의 응원 방식이 작용한다고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욕망하고, 욕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케이팝 문화 안에서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을까요? 가령, 남성이 사회적으로 전통적인 여성성을 수행하는 모습에 끌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워크숍 참여자 A님은 눈물을 보이거나 내면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일 때 더 큰 애정을 느끼며, 소위 말하는 ‘연약한 존재’를 지켜 주고 싶은 열망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여성 팬들이 남성 아이돌에게 인형 탈을 쓰게 하거나 애교를 요청하는 것도 이러한 욕망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내 아이돌로부터 ‘무해함’을 기대하며, 그것을 욕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유해한 관계와 상황을 반복해서 겪을수록, 상처 주지 않을 것 같은 존재에 기대고 싶어지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해함이란 사회의 공격성이나 피로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방치된 상태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소모해야 하는 관계까지를 아우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잘 관리되고 무결해 보이는 아이돌의 모습은 현실에는 없는 안전한 환상처럼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아이돌을 바라보는 ‘젠더적 위치’에 따라 아이돌을 사랑하는 방식 역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유진 님은 젠더 파트 쪽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아이돌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고 말합니다.
나는 스스로의 젠더를 여성이고, 아이돌과 이성애 관계를 상상해왔던 것 같다. 그게 그들과 사귀고 싶다라는 더 나아가는 욕망과 별개로. (…)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최애를 ‘아이돌, 남성’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람, 무성’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젠더적 위치 자체가 ‘연애/성애의 자리’에서 ‘돌봄/응시/윤리의 자리’로 이동한 결과였다. 최애와의 관계에서 성적 욕망이 사라지고, 이 사람을 아이돌보다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관계의 프레임이 바뀌었다.
케이팝 문화 속에서 젠더 규범은 뒤섞이고 왜곡됨과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관계를 상상해 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관계를 욕망하고 어떤 젠더 감각 속에서 사랑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케이팝을 사랑하는 마음은 곧, 욕망과 시야를 탐구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사랑: 최애와 연대하기
케이팝 산업은 팬의 ‘사랑’을 동력 삼아 움직이지만, 그 사랑의 형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해 온 사랑과는 다소 다릅니다. 일상의 사랑은 대체로 상호성을 통해 학습됩니다. 그것은 내 행동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소통과 조정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가꾸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케이팝에서의 사랑은 종종 ‘응시’에서 시작되어 귀결되는 방식으로 형성됩니다. 이는 팬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가 서로를 돌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라기보다, 다양한 콘텐츠와 이미지를 소비하며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그와 더불어, 산업은 지속적으로 팬에게 소비주의적인 사랑의 방식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아이돌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애쓰는 일이 곧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음악방송 1위, 초동 판매 기록, 경연 프로그램의 승리, 연말 시상식 수상, 지하철 생일 광고 등의 성취들이 주요 사랑의 척도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팬 집단은 아이돌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아이돌 역시 이러한 성과를 통해 팬들의 헌신에 보답해야 한다는 기대 속에 놓이게 됩니다.⁵
우리는 아이돌을 어떻게 ‘응원’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가 선택해 온 사랑의 방식이 소비주의에 기대있거나 의도치 않게 아이돌의 노동과 소진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그와는 다른 사랑의 가능성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고민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랑의 형태를 감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질문들을 제안했습니다.
● 그 사랑은 나의 어떤 욕망과 이어지는 것 같나요?
● 아이돌에게서 회복하고 싶은 나의 욕망/결핍은 무엇인가요?
● 어떤 순간의 아이돌을 가장 사랑하게 되나요? (재능을 보여줄 때, 열렬함을 드러낼 때, 상처를 드러낼 때, 케어가 필요할 때)
● 아이돌을 사랑하면서 상처받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요?
질문을 건네고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그 이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데뷔를 앞두고 있어 불안정하면서도 불완전한 모습을,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모습을, 부족하지만 무대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사랑하기에 무한한 응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케이팝 산업과 문화 속에서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사랑의 방식 중 하나로 변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를 제안했습니다. 변혁적 정의는 퀴어, 흑인, 원주민, 라틴계 등 다양한 소외된 공동체들이 증오 범죄, 성폭력, 가정 폭력과 같은 대인 간 피해를 겪은 이후에도 경찰과 법원에 의존해서는 충분한 정의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확산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개인의 행위만이 아니라, 그 책임이 놓인 공동체와 우리가 함께 얽혀 있는 더 넓은 구조와 환경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개인의 잘못을 단죄하는 대신, 그 일이 가능했던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부담과 비용이 전가되었는지를 묻고, 피해를 회복하며 폭력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른 대응과 관계의 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변혁적 정의의 실천에 기반한 사랑은 단순히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잘못된 구조 앞에서 누구도 혼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개인과 연대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산업은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팬들은 그 생태계 안에서 아이돌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 개인은 팬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기대 속에서 더욱 자신을 소모하게 됩니다. 성과와 경쟁, 소비가 중심이 된 케이팝 산업 안에서 오직 아이돌의 실적과 승리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결국 산업이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 머무를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돌 개인이 구조 안에서 소진되도록 두기보다, 그 구조 자체를 함께 문제 삼고 질문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닫는 글: 그럼에도 사랑해!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순적이고 복합적일 수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몸이 부서질 듯 춤추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을 사랑하면서도 끝내는 그가 무결하고 무해한 존재로 남아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남성 아이돌을 사랑하며 영원한 소년으로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사회가 규정한 전형적인 남성성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품기도 합니다. 워크숍 참여자들이 종종 했던 질문, “내 마음은 대체 뭘까?”처럼 아이돌을 향한 마음 안에는 사랑과 욕망, 기대와 실망, 질투와 애정이 뒤섞여 오갔습니다.

워크숍 마지막 회차에서는 그동안 다루어 온 감정들을 재료 삼아, 한 편의 글로 정리해 보길 제안했습니다. 집단 안에서 어떤 팬으로 남고 싶은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사랑해 왔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 가고 싶은지 돌아보는 과정은 ‘나’의 내면과 내가 서 있는 세계를 점검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글에서 누군가는 케이팝 팬덤 커뮤니티 내에서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최애로부터 배우게 된 사랑의 형태를 돌아보았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케이팝 산업과의 불화를 감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적었고, 누군가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케이팝을 자유로운 유희의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케이팝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의식과 비판을 나누었음에도, 마지막에 이르러 적은 것은 각자의 ‘사랑의 언어들’이었습니다.
아이돌을 사랑한다는 일은 대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을 선택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안전하거나 확실한 선택만은 아닙니다. 몇몇 아이돌이 범죄나 사고에 연루되며 대중을 실망시켜 온 사례들처럼, 무대 위 혹은 화면 속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언제든 실망과 상처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케이팝 산업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은 채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자본이 불어나는 속도 앞에서 팬 개개인은 점점 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산업이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기보다 더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사랑을 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케이팝 세계 속에서 문제들은 마치 지뢰처럼 산재해 있지만, 이 구조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사랑을 좇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8주 간의 워크숍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기보다는, 더 크고 복잡한 물음표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용기 있게 사랑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여자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 문헌 및 각주
¹ 장지현, ‘최애’와 ‘팬덤’ 너머…‘자본가’들의 케이팝이 말하지 않는 것, 2025, 한겨레
² 김은정,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들: ‘창의 노동’의 환상과 그림자, 2025, 한겨레
³ 아티스트와 팬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유료 구독 기반 소통 플랫폼
⁴ 허윤, 무대 위의 남성성/들과 케이팝의 이상한(queer) 젠더 수행(performance), 한국국제교류문화진흥원
⁵ 아밀, ‘소비자’가 아닌 팬으로, 나의 최애를 어떻게 사랑할까, 한겨레, 2025
⁶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특정 인물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을 문제 삼아 공개적인 비판이 집중되고, 그 결과 사회적 지위나 활동의 장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책임을 묻고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충분한 맥락이나 설명 없이 처벌과 단절로 이어지며 논쟁을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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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AAD 박서진
디자인 | AAD 이혜림
도움 | AAD 김민아, AAD 박정은, AAD 이서영
